“한국, 빨리 다이내미즘 회복해야”
아시아 시민운동 리더 월든 벨로 교수
이미숙기자 musel@munhwa.com
아시아 시민운동계의 리더로 꼽히는 월든 벨로(62) 필리핀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은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면서 “한국은 하루빨리 과거의 다이내미즘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공회대 아시아 NGO대학원 개설 기념 특강을 위해 방한한 벨로 교수는 23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은 너무 자신의 내부 문제에만 몰입하지 말고 밖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충고했다.
태국 방콕에 본부가 있는 국제 비정부기구(NGO) ‘남반구 포커스’의 창설자이자 대표인 벨로 교수는 아시아에서 가장 글로벌 마인드를 지닌 진보성향 학자로 정평이 높다. 아시아 NGO대학원은 성공회대가 현대자동차, 5·18재단 등과 협력해 설립한 국내 최초의 아시아 시민운동가 육성 프로그램이다.
―필리핀 출신 아시아 지식인으로서 한·중·일 3국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중국은 아주 크고 강력한 경제권이기 때문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동남아 경제가 중국의 의도로 재편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일본은 쇠퇴하는 파워다. 물론 아직도 경제적으로 힘이 강하고 부유하지만 그 힘은 쇠락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일본보다 강력한 경제파워로 인식된다. 일본 주도의 경제파워는 이미 중국으로 이전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은 아직 1998년 외환위기를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과거 한국이 갖고 있던 다이내미즘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원인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리더십 때문이라고 보는가.
“그런 측면도 있지만 외환위기 이후 경제가 개방되면서 신자유주의가 급속히 확산됐다. 또 남북관계가 진전되면서 많은 파장을 낳고 있다. 요즘 한국은 남북관계와 사회 내부문제에 너무 빠져 몰입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한국에서는 진보와 보수간에 대논쟁이 일어나고 있는데 한국의 이념논쟁에 대해 평을 한다면.
“어느 나라나 지식인 논쟁은 있다. 새로운 시대는 늘 많은 문제를 낳고 지식인들은 이같은 도전에 직면해 새로운 답을 찾게 된다. 진보와 좌파의 비전이 의미가 있으려면 한국을 압도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을 놓고 경쟁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상보다 구체적 현실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1960년대 필리핀은 한국보다 훨씬 개발이 됐던 나라인데, 30여년만에 역전됐다. 무엇이 필리핀과 한국이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만들었다고 보는가.
“필리핀의 구조적 문제는 토지개혁이 이뤄지지 않은 점이 가장 크다. 한국에서는 비록 제한적이었지만 토지개혁이 있었다. 그러나 필리핀에는 그런 게 없었다.”
―지도자의 리더십 때문이라고 보는가.
“그런 측면도 있다. 지주계급이 미국의 지지하에 있어서 산업정책을 쓸 수 없었다. 1960, 70년대에는 산업정책이 코코넛, 설탕 등 농작물 수출에만 집중됐다.”
―전세계가 하나의 경제권으로 통합되는 글로벌 트렌드속에서 한국은 어떻게 대안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보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보수주의가 강한 게 사실이다. 진보주의자들이 대부분 이상주의적 성향인 것과 달리 보수주의자들은 현실경제운용법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우선 중산층이 신뢰할 수 있는 부분에서 대안을 만들어가야 한다.”
―국내에선 미국 등 선진국 주도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좌파 활동가로 소개돼왔는데 자신의 입장을 직접 설명한다면.
“나는 실용주의자다. 보수주의자들은 나를 좌파 반(反)세계화주의자라고 하고, 필리핀 공산당은 나를 개혁적 반혁명주의자라고 비판하지만, 내가 견지하는 이념은 실용주의다. 국민의 파워가 강해져야 사회의 민주화가 이뤄진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다. 물론 나는 신자유주의적 독트린을 싫어한다. 그렇다고 나는 좌파적 독트린을 견지하는 전통적 좌파는 아니다.”―한국과의 인연은 어떻게 되나.
“1988년 한국경제 연구를 위해 첫 방한한 이래 10번쯤 온 것 같다. 그간 최장집 김대환 교수 등과 토론하며 한국경제 관련 책을 썼다. 1989년엔 북한에 2주 동안 갔었다. 평양과 백두산, 비무장지대 북한지역을 살펴봤는데 아주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당시 북한은 아직 식량난이 본격화할 때는 아니었지만 경제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는 이미 보편화했던 시점이었다.”
이미숙기자 musel@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7-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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