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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홍(2009), 타이의 사회운동과 헌정주의 : ‘74년체제’와 ‘97년체제’의 비교

한국태국학회논총 16(1), 200908, 한국태국학회

한국태국학회논총 16 1호

타이의 사회운동과 헌정주의

: ‘74년체제’와 ‘97년체제’의 비교*

1)박 은 홍**

Ⅰ. 들어가며

민주주의의 핵심은 이익과 가치를 달리하는 정치세력간들 간의 경쟁이다(Przeworski 1991: 67). 1980년대 이후 개발도상국에서의 여러 사회운동들은 민주주의를 구축, 강화하는 것이 압제를 타파하고 참여를 늘리고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과 불의를 극복해가는 길이라고 믿었다.1)


일찍이 타이에서 사회운동과 정당정치가 만개했던 초유의 시기는1973년 10월 14일 민주혁명과 그 결과로서의 1974년 헌정체제이다. 그동안 타이에서는 대중의 의사를 반영한 대의제도가 존재한 적이 없었다. 타이 유권자들은 투표를 통해 비효율적이고 무능력한 정부를 퇴출시킨 적이 없었다(Dalpino 1993: 214). 그러나 ‘74년체제’ 하에서 의 정치적 개방은 정당 간 경쟁과 방콕중심의 저항, 그리고 언론 보도량을 급증시켰다. 특히 농촌지역에서 새로운 사회세력이 동원될 수 있었고, 신생 좌파 정당들이 등장했으며, 하원의 불신임 권한이 강화되었다(Doner and Anek 1994: 416-417).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진화하고 있는 ‘74년 헌정체제’는 우익의 반발로 파국을 맞았다.


그러나 뒤이어 등장한 타닌 정부가 극단적인 반공주의로 억압정책을 펼침으로써 타이공산당(CPT, Communist Party of Thailand)의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고 판단한 군부는 다시 쿠테타를 일으켜 신정부를 구성하고 반민주주의(semi-democracy) 시대를 여는 신헌법을 제정하였다.2) 1970년대 말의 자유화 조치는 일종의 사회운동의 지연된 효과 (delayed effects)였다(박은홍 2007).


1992년 5월 민주주의로의 복귀를 요구한 대중투쟁 이후 군부는 정치무대 전면에서 퇴장하였다. 1992년 5월 민주항쟁은 ‘74년체제’의 개혁성을 확대한 새로운 개혁적 헌법이 구상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정된 헌법이 1997년 신헌법이고, 이것은 시민사회의 의사를 수렴한 가운데 제정되었다는 점에서 ‘국민의 헌법’으로까지 불렸다. 그리고 ‘97년체제’ 하에서 타이 최초의 정책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타이애국당의 집권이 가능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97년체제’ 하에서의 첫 집권세력인 탁신의 타이애국당은 케인즈주의정책을 근간으로 하는 포퓰리즘을 통해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보하였다(Ji 2007, 111; McCargo and Ukrist 2005). ‘탁시노크라시’(Thaksinocracy) 시기의 타이 민주주의는 ‘97년체제’를 일구어낸 타이 시민사회의 지지를 이끌어낼 정도로 ‘대안있는 선거’(election with choice)를 조직해냈다. 그러나 탁시노크라시의 포퓰리즘은 언론 통제, 남부 무슬림들에 대한 인권유린, 비사법적 처형을 허용한 마약소탕작전과 함께 진행되었다(Ji 2006: 579). 마침내 2006년에 들어와 타이 사회운동진영이 탁신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이른바 ‘포퓰리즘 헌정주의’3)를 종식시키기 위한 운동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반(反)탁신 사회 운동과 탁신세력간의 대치 상황이 첨예화되었다. ‘97년체제’는 정치 시장에서 절대 다수의 지위를 점한 타이애국당과 사회운동 간의 상호 배타적 관계가 심화되면서 군부 쿠테타로 붕괴하였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74년체제’ 하에서는 입헌군주제에 비판적이었던 사회운동의 주류가 ‘97년체제’ 하에서는 입헌군주제를 옹호하면서 교착 국면의 타개를 위한 국왕의 개입을 요청함과 동시에 쿠테타 까지 용인하였다는 점이다. 여기에다가 반탁신진영은 ‘74년체제’ 하에서 우익세력이 그러했듯이 탁신과 그의 지지세력을 군주제를 부정하는 공화주의자로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이들 반탁신세력이 내세우는 ‘신정치’는 ‘타이식 민주주의’(Thai-style Democracy)로 정당화된다.


반면 친탁신세력은 ‘좋은 쿠테타’란 어떠한 경우에도 있을 수 없음을 주장하면서, ‘97년체제’의 복원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탁신시기 포퓰리즘 헌정주의로 인한 ‘다수의 횡포’(tyranny of the majority) 문제에 대해 관대하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실제 이들이 내세우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핵심은 다수정(majoritarian rule)이다. 이로써 2006년 9월 쿠테타를 계기로 타이 사회운동진영은 쿠테타 지지세력과 쿠테타 반대세력, 존왕주의 세력과 헌정주의 세력으로 확연하게 분열하였다.


일찍이 타이 정치는 정치적 게임의 틀을 제도화한 헌정주의의 붕괴로 탈민주화(de-democratization)를 반복적으로 경험했다. ‘74년체제’ 하에서 사회운동은 정당정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지 않았다. 군부-관료-국왕을 중심으로 한 보수동맹은 공화주의적 양상을 보이는 사회운동에 대해 폭력과 쿠테타로 맞섰다. 그러나 ‘97 년체제’ 하에서 사회운동은 한때 탁신체제와 밀월관계를 유지하다가 파국을 맞으면서 오히려 존왕파를 중심으로 한 보수동맹과의 제휴를 통해 다수의 폭정에 맞섰다. 타이 사회운동은 다수의 횡포를 초헌법적 존재인 국왕이 승인하는 쿠테타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세력과 민주적 헌정체제를 파기하는 어떠한 쿠테타도 용납될 수 없다는 쿠테타 반대세력으로 분열하였다. 이로써 타이의 헌정체제는 다시 악순환의 고리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 글은 타이에서 대표적인 민주적 헌정체제인 ‘74년체제’와 ‘97년 체제’의 파국을 통해 타이 사회운동에서 차지하는 헌정주의의 의미를 타이 사회운동과 정당정치의 관계를 통해 고찰하고자 한다.


* 이 논문은 2005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

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KRF-2005-J05202).

**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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