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에 사는 사람들
[대안경제를 말한다 12] 취약·빈곤계층 대책이 아쉽다
작성날짜: 2005/01/17
정원오기자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 그들은 고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이 아니다. 새벽 인력시장을 통해 하루를 벌어 하루 사는 일용노동자, 거리의 붕어빵 장수, 영세 중소기업의 비정규직 노동자, 식당 종업원 등 저임금, 불안정한 노동에 종사하면서 값싼 잠자리를 찾아든 사람들이다. 이들 중 일부는 새로운 직장을 찾아 이동하는 과정에서 일시적 주거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례이지만, 대부분은 그들의 직장만큼이나 불안정한 잠자리를 영구적으로 지속하고 있다. 물론 그들마저도 한 고시원을 1년 이상 머무는 경우는 드물다. 이 고시원에서 저 고시원으로, 여인숙에서 고시원으로, 고시원에서 거리의 노숙생활로 부랑(浮浪)한다.
이들에게 따뜻한 가족은 없다. 결혼한 경험이 없거나 최근에, 혹은 몇 년 전에 이혼하여 가족이 해체된 독신자들이다. 이들은 미안하고 부끄러워, 혹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친구들, 친지들을 만나지 않는다. 비슷한 처지의 옆 방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그들은 사람과 자동차의 홍수 속에서, 소음과 공해로 찌든 도심 속에서 혼자 살아가고 있다.
한 평 반 남짓한 고시방은 한사람이 누우면 더 이상 여유가 없는 조그만 침대 하나, 책상 하나, TV 한대로 빼곡히 차있고, 어른 어깨 하나 반 정도 너비의 복도를 사이에 두고 같은 크기, 같은 모양의 방들이 일렬로 공간을 분할하고 있다. 좁은 공간에 많은 방을 배치해야하는 효율성을 위해 대부분의 방들은 창문을 허락하지 못한다. 창문을 통해 외부와 호흡하고 싶은 사람은 삼, 사 만원을 주거비용으로 더 지불할 여유가 있어야 한다. 월 이십만원의 임대료를 지불하면 반찬이 없는 식사(밥)가 제공된다. 최근에는 고시원들 간 경쟁이 치열해져서 국이 보너스로 제공되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필자가 고시원에서 만난 한 연변 출신의 조선족 동포는 고시원 인근의 구슬 악서세리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의 월급은 처음 2년간 65만원이었단다. 한국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약간의 임금투쟁(?) 끝에 현재는 월 110만원에 고시원 임대료가 지원되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매달 100만원씩 저축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한국에서 일한지 한 삼년 되었는데, 돈 천만원 모았으며, 그의 목표액은 삼천만원이다. 이 돈이면 연변에서 좋은 아파트 한 채 마련할 수 있는 정도인데, 목표가 달성되면 귀국하겠단다. 그는 월 10만원으로 생활하고 있는데, 가게에서 삼천원이면 살 수 있는 김치가 비싸서 매일 오이장아찌를 반찬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한국에서 쓰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어요. 중국으로 돌아가서 마음껏 쓰고 살래요.” 한달 생활비의 오분의 일을 핸드폰 이용요금으로 지출하고 있는 그는 연변에 있는 가족과 결합하는 희망의 끈을 붙잡고 살아가고 있다.
당뇨로 한쪽 눈을 실명한 전직 밤무대 통기타 가수 출신의 권모씨는 오랜 노숙생활로 건강이 망가진 경우다.
그는 한달 50만원 정도로 생활하고 있는데, 부족한 생계비는 일용노동을 통해 충당한다. 건강상의 문제로 힘든 일을 하지 못하므로 일용 일자리도 맡기 어려운데, 한달에 10일 정도 새벽시장에 나가면, 절반 정도는 헛걸음하고, 절반정도는 일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월 25만원의 방값을 지불하고 나면, 이 삼십 만원으로 한달을 살아야 하는데, 최선의 방법은 쓰지 않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하루 종일 고시원에 있어요. 어디 가면 돈 드니까. 당뇨로 통증이 심하면, 눈을 붙이기 위해 소주 한 두병씩 마시지요. 술 먹고 소란 피우면 쫓겨나니까, 조용히 혼자서 마시지요. 생활비는... 소주값, 담배값, 반찬값으로 쓰지요. 그게 다예요.”
돌아오는 길에 필자도 소주 한 잔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 고시원은 주거공간이 아니다. 고시라는 인내의 한계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일시적인 공부방 일 때, 열악한 공간의 한계는 인정될 수 있다.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있는 빈곤계층이 가장 값싼 주거공간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순간, 고시원은 비인간적 주거공간이다.
필자의 가슴을 짓누르는 또 하나의 걱정은 이러한 역할을 하는 고시원조차도 없어질 위기에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기타 시설로 분류되어 법적 통제에서 벗어나 있던 고시원이 올해부터 숙박시설로 등록해야 하며, 화재 위험 등을 예방하는 일정한 시설조건을 갖추지 못할 경우 등록이 취소된다.
현재의 고시원이 지니고 있는 주거 공간적 문제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바람직한 방향이긴 하지만, 저렴한 숙소로서의 보완과 지원 없이 기계적 대응방식이 부를 또 다른 문제, 즉 비용을 마련하지 못하는 취약계층이 어디에서 잠자리를 마련할지 걱정인 것이다. 저렴한 주거 대책, 임대료 지원 정책 없는 고시원 대책은 힘든 도심생활에 적응하고 있는 다수의 빈곤계층을 더 어려운 상황으로 내모는 결과로 귀착될까 두렵다.
정원오(성공회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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