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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신문] 조효제-"시민사회, 재앙극복 국제연대에 나서라"

"시민사회, 재앙극복 국제연대에 나서라"

[특별기고] 국가 울타리 넘는 '민간 연대' 필요

작성날짜: 2005/01/03

조효제기자


이 글을 시작하기 전 나는 동남아 해일사태에 대한 최신뉴스를 인터넷에서 확인했다. 사망자 수가 14만명에 가깝다는 보도였다. 사건의 전체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세계가 얼마나 많은 비참함으로 가득 차 있는지를 다시금 반추하게 된다. 2004년을 마감하는 10대 뉴스가 연말에 발표된 직후 이런 대형사건이 터졌으니 우리는 얼마나 예측불가능한 세상에 살고 있단 말인가.


국제 구호단체들은 사상 초유 규모로 인도적 지원에 나섰다. 몇 해 전 인도의 구자라트에서 대형 지진이 발생했을 때에도 사상 최대규모의 구호사업이라는 말을 했는데 이번 사태는 그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한다. 구호금을 내겠다는 사람이 너무 많아 NGO들의 홈페이지와 전화선이 하루 종일 불통이고 자국 정부가 왜 그 정도밖에 공식원조를 하지 않느냐고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쳐 정부가 급하게 원조액을 증액한 경우가 한 두 나라가 아니었다.


우리는 어떠했는가? 뉴스로 크게 보도는 되었지만 가장 큰 관심사는 한국인이 몇 명 실종되었을까 하는 정도였고 생색내기 수준으로 긴급 자금을 배정하고 국회동의를 얻었다는 보도가 있을 뿐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한국의 시민사회도 큰 관심이 없어 보이기는 매 한가지다. 세계 12위권의 무역대국이자 OECD 국가로서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언제쯤이면 우리의 객관적인 위상에 걸맞게 국제사회에서 성숙한 행동을 취할 수 있을까? (사진=우리민족서로돕기)


여기서 우리는 국제연대에 대한 희망을 가로막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관점 한 가지를 확인하게 된다. ‘우리도 아직 부족한데 타민족에게까지 무슨 사치스런 이야기냐’ 라는 식의 냉소주의다. 이런 식의 기본전제가 뿌리 깊은 민족주의적 사고와 결부되어 우리를 대단히 내향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국가와 시민사회로 만들고 있다.


이론적인 논쟁의 자리가 아니지만 여기서 꼭 짚어두고 싶은 점이 있다. 즉 민족중심주의와 현실적 민족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의 개념이라는 것이다. 민족중심주의를 배격하면서도 현실적 민족문제의 중요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한국의 민족주의자들과 이른바 탈민족주의자들 양 진영 모두에게 내가 늘 아쉽게 여기는 부분이 바로 이 두 차원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덧붙여 현실적 민족문제를 제대로 풀기 위해서는 민족 단위의 문제가 세계사회와 늘 이원적으로 상호작용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민족이라는 정치단위 없이는 세계사회도 존재할 수 없고 세계사회 없이는 민족이라는 단위도 아마 민족 하부단위로 더욱 분열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본다면 민족과 외부세계를 나누는 이분법은 그 전제부터 잘못된 것이며 현실적 민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외부세계와 소통하고 기여하는 것이 사활적이라는 말이다.


예컨대 이번 해일 사태만 봐도 그렇다. 피해를 본 지역이 인도 등 서남아 국가, 그리고 동남아 각국들이다. 이 나라들은 전통적으로 비동맹권이었고 하나 같이 남북한 관계에서 일정한 채널과 나름대로의 영향력을 가진 나라들이다. 탈북자 문제도 이들 나라가 많은 역할을 하고 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다시 말해 인도주의적 배려만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민족이익을 위해서라도 이번 사태와 같은 경우에 적극적인 기여를 할 전략적 필요성이 있다.


따라서 국제연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꿈꾸는 몽상가’로 비웃지 말기 바란다. 시민사회는 유토피아적 현실주의를 추구해야 한다. 한국 시민사회가 민족현실과 외부세계를 가르는 허위의 이분법을, 그리고 민족현실과 민족중심주의를 혼동하는 오류를 벗어던질 때에 질적인 도약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한국 시민사회운동이 어떻게 외부세계와 소통하고 그것에 기여할 수 있을까?


우선 시민사회는 국가개념을 중심으로 한 국제연대 개념을 뛰어 넘어야 할 것이다. 국가들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국제적’(inter-national) 개념으로부터 민중들 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민제적’ (inter-popla) 개념으로 외부세계와의 소통을 꾀해야 한다. 국제연대의 민중적 차원을 근원적으로 성찰해 보자는 것이다. 또한 시민사회내 여러 섹터의 채널들이 각기 수행할 수 있는 민제적 연대의 차원들을 전체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국내 시민사회에도 감시와 비판을 주로 하는 ‘주창형’ NGO단체와 복지서비스 제공을 중심역할로 삼는 ‘현장활동형’ NPO단체가 있듯이 국제 영역에서도 주창형 국제NGO와 복지-구호형 국제NPO가 양립하고 있다. 이번 해일사태의 경우 단기적으로 국제NPO의 활약이 두드러져 보이지만 이번 사태에서 해안지방의 난개발과 해양 생태계의 파괴도 일정한 원인제공을 했다는 지적을 기억한다면 장기적으로 국제 환경NGO의 기여도 크다고 보아야 한다.


NGO와 NPO가 모두 시민사회의 중요한 부분들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국제연대 분야에서도 무척 중요하다. 또한 여태까지 한국 시민사회가 소홀히 다루었던 국가 외교분야의 민주화와 국민참여형 국제관계 모델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 점에 대해선 다른 기회에 상술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우리 시민사회 단체들은 거창한 국제연대라는 큰 틀의 논의와 함께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들을 기획하면 좋을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반대와 같은 거대담론적 구호가 구호만으로 끝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미 좋은 움직임들이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해결을 위해 매주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벌이는 인권단체도 있다. 베트남 시민사회의 발전을 위해 현장에서 차근차근 노력하는 자생적 국제NGO도 생겨났다. 우리와 환율차이가 큰 나라들을 중심으로 지원을 집중하는 지혜도 생겼다.


유엔이 권고하는 GNP 0.7 퍼센트의 해외원조 아이디어를 본 따 시민사회단체 예산의 0.7 퍼센트를 아시아권을 위해 쓰자는 제안도 들린다. 예산으로 지원이 어렵다면 시민사회단체들이 조직하는 워크숍, 연수, 교육 프로그램 등을 한국에 와 있는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에게 일정 부분 반드시 개방하여 사상과 의견을 공유하면 어떨까? 각 단체에서 일주일에 하루씩 책상 하나, 컴퓨터 하나씩을 이주노동자에게 개방하여 일종의 단기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어떨까?


모든 것은 생각하기에 달렸다.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나는 이런 구체적 실천으로써 한국의 시민사회가 탈민족중심주의적 민족현실주의 노선, 그리고 민족현실과 외부세계의 상호보완이라는 시대적 과업을 새해부터 모색하기를 진정으로 소망한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겸 NGO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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