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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세상]개헌 논의에 ‘급진의제화’ 전략으로 개입하기

개헌 논의에 ‘급진의제화’ 전략으로 개입하기

[특별기획 : 개헌,반신자유주의 정치논쟁으로](1) - 급진화와 개헌 논의

조희연(성공회대) / 2007년03월21일 13시10분


87년 6월 항쟁은 아래로부터의 반독재투쟁이었다. 그에 반해 6・29선언은 그러한 아래부터의 투쟁에 대응하는 통치권력의 위로부터의 응전이었다. 이 두가지가 교직(交織)하면서 만들어진 체제가 바로 87년 체제이다. 이런 의미에서 87년 체제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한편에서 보면 87년 체제는 아래로부터의 동력에 의해 군부독재가 무너지고 민주주의적 공간이 창출되었다는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 87년 체제는 위로부터의 응전에 의해서 제한되고 굴절되었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다(이것은 87년 체제가 한국 보수세력의 완전한 패배가 아니고 보수세력에게도 일정한 이니쉬어티브와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6・29 선언 이후 투쟁을 주도하는 반독재세력 및 민중세력은 헌법개정의 장으로부터 소외되었고 반독재운동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던 중도자유주의적 정치세력과 구 독재세력의 협의에 의해서 헌법이 개정되었다. 그런데 이 헌법논의의 장이 아래로부터의 투쟁과 그에 따른 군부독재 지배체제의 균열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일정한 진보적 요소를 담지 않을 수 없었다.


87년 체제 하에서 만들어진 87년 헌법은 87년 체제의 이중성을 정확히 반영하여 이중적인 성격을 지닌 채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87년 이후의 운동은 바로 87년 체제와 87년 헌법의 긍정적인 측면을 현실화하기 위한 투쟁으로 전개되었다.


민중이 정립한 민주주의와 독재가 정립한 자본주의의 전쟁


여기서 논의를 좀 추가해보자. 현재의 정세를 이해하는 데에는, 87년 체제의 이중성 뿐만 아니라, ‘87년 체제와 97년 체제의 관계’를 부언해야 한다. 나는 87년 6월 민주항쟁에서 정점에 이른 투쟁을 통하여 반독재세력과 민중세력은 한국에 민주주의를 정립하였고, 반대로 개발독재 보수세력은 독재를 통하여 한국에 자본주의를 정립시켰다고 표현한다. 87년 이후의 시기는 민중이 정립한 민주주의와 독재와 보수세력이 정립한 자본주의의 ‘전쟁’이 진행되었다.


여기서 반독재세력과 민중세력은 87년 투쟁을 통해서 정립된 정치적 민주주의를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 확대하고 그를 통해서 자본주의에 대한 민주주의적 규제를 확장하려고 투쟁해왔다고 한다면, 한국의 자본세력, 보수세력은 - 87년 투쟁을 통해서 정립된 - 민주주의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대신에 이를 자본주의의 정치적 외피(political shell)로 형식화하거나 무력화하려는 투쟁해왔다.


이러한 투쟁과정에서 97년 체제의 성립은 이 전쟁의 콘텍스트를 현저하게 변화시켰다. 즉 IMF 위기극복이라는 이름으로 반독재 민주세력의 집권 자유주의 정치세력은 금융시장 개방 등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개방을 전면화하였고(물론 이는 문민정부에서부터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현재 한미FTA라는 이름으로 진행된다), 이를 통해 신자유주의적 지구화가 ‘외적 제약’이 아니라 ‘내부적 힘’이 되었다.


이것은 또한 반독재 세력의 일부가 97년 체제에서 후자의 투쟁에 흡수되고 한국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담지세력의 일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97년 체제의 성격이다. 97년 체제의 성립을 통하여 ‘민주주의의 급진적 확장’을 도모하는 아래로부터의 투쟁과 ‘민주주의를 자본주의의 외피’로 만들려는 위로부터의 투쟁은 새로운 콘텍스트에 놓이게 되었고, 민주주의를 무력화하는 보수세력의 힘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되었다.


우리가 개헌을 논의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콘텍스트 속에서이다. 87년 체제의 이중성과 97년 체제에 의한 87년 체제의 규정이 바로 그것이다. ‘정치’가 해야 할 몫을 사법적 판결에 떠넘기는 이른바 ‘정치의 사법화’ 경향은 87년 체제 하에서의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87년 헌법의 한계를 문제삼는 지점에 이르렀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개헌 논의는 중장기적으로 불가피하다.


헌법 논의에 작용하는 두가지 힘


이런 의미에서 현재의 개헌 국면의 정세는 두가지 힘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앞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전쟁은 헌법문제를 둘러싸고도 표현되는 것이다. 즉 한편에는 87년 체제(그 반영으로서의 87년 헌법)의 한계와 87년 체제 하에서의 새로운 도전(신자유주의의 도전 등)에 대응하여 87년 체제를 급진적으로 확장하려는 ‘개헌’의 흐름이 있다. 다른 한편에는 87년 체제 하에서의 제한된 정치경제적 개혁 조차도 ‘과잉’으로 규정하고 또한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같은 새로운 도전에 편승하여 87년 헌법의 역진 혹은 보수적 재조정을 도모하려고 하는 흐름이 존재한다.


후자는 97년 체제의 보수적・신자유주의적 효과를 적극 활용하면서 87년 헌법의 진보적 측면을 ‘해석적으로’ - 그래서 보수에 의한 많은 헌법소원이 제기된다 - 무력화하고 제한하려고 하는 것은 물론이다. 물론 당연히 현시기 진보세력은 87년 체제의 긍정적 측면을 급진적으로 확장하고 97년 체제의 도전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헌법을 급진적・진보적으로 개정하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 ‘원포인트 개헌’은 이러한 근본적인 대립을 우회하여 절차적 측면만을 개헌의제화하려고 하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87년 헌법을 뛰어넘는 새로운 헌법개정의 의미 보다는, 87년 체제 하에서 ‘최소합의’처럼 논의되어온 - 물론 이것도 최근에 쟁점이 되고 있다 - ‘총선과 대선의 일치’라고 하는 절차적 조항을 개정하려는 것이다.


급진적 의제화 전략에 기초한 전술적 개입


앞서의 나의 논지에서 볼 때, 헌법을 개정한다고 하면, 진보세력의 입장에서는 ‘87년 헌법의 진보적 개정’(이를 ‘사회적 개헌론’이라고 하자)이라고 하는 방향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단지 개헌논의의 계기는 절차적 조항을 중심으로 최소주의적 개정을 하려는 노무현정부에 의해서 주어진다. 결국 여기서 우리에게 헌법개정은 최소절차적 개헌, 혹은 그것을 시도하는 국면, 또한 87년 헌법의 보수적 개정의 힘이 위협적으로 존재하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87년 헌법의 진보적 개정’의 지평을 열고 우리가 지향하는 진보적 개정내용들을 대중화할 것인가하는 ‘전술적’ 과제로서 제기된다.


여기서 ‘전술적’이라는 의미를 부여해야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보수와 진보 간에 치열한 각축이 존재하지만, 2004년 탄핵투쟁에서도 보여지듯이 87년 6월 민주항쟁이 마련해준 ‘민주주의의 마지노선’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즉 87년 헌법을 후진시키는 개정은 불가능하다. 보수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단지 전진시키는 개정이 보수의 능동화와 97년 체제의 제약으로 인하여 대단히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사회가 ‘보수적 사이클’로 접어들고 있다(대중의 보수화의 실체와 성격에 대해서는 별도의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지만)는 느낌도 있다. 그런 점에서 진보적 헌법개정을 위한 공간이 제약된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나는 전술적 관점에서 급진적인 의제화 전략의 형태로 개입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노무현 정부가 처음 개헌론을 제기했을 때,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세력 일반은 기본적으로 한나라당과 동일한 전략을 선택하였다. 즉 노무현 정부가 개헌 의제화(議題化) 전략을 구사하고자 했다면 한나라당은 탈(脫)의제화‘ 전략 혹은 ‘의제화 억제’전략을 구사한 셈이고,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세력은 후자의 입장에 선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인기가 최악이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의 제안을 활용하고자 하는 전략 조차도 ‘덤테기’를 쓸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나는 초기에 ‘급진적 의제화 전략’을 썼었어야 하지 않는가하는 판단을 한다. 즉 '사회적 개헌론'을 통해서 사회적 개헌 의제들을 제시하고 개헌을 의제화하면서 그것을 급진화하는 전략으로 개입했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정부의 개헌 의제화 전략을 편승하고 활용하면서 - 물론 활용은 개헌의제화 전략을 제한적으로 수용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 우리가 정작 급진적으로 의제화하고자 하는 것들을 대중에게 제시하는 방법 같은 것이다. 정치적 언술로 이야기한다면, ’조건 수용론‘이다. 조건이라는 언술을 통해서 대중에게 개헌의 진보적 의제들을 제시하는 셈이다. 초기에 민주노동당의 심상정 의원도 ‘사회적 개헌론’의 입장을 개진하였고, 최근 문성현 당대표도 ‘다포인트 개헌’이라는 이름으로 이를 언급한 바 있다.


다양한 진보세력의 헌법 원탁회의


현재 노무현 정부가 기존 정치세력이나 대선 주자들이 개헌에 대한 합의안을 제출하면 개헌안을 보류할 수 있다고 표명하였다. 그러나 이는 난망하며, 노무현 정부는 의회에서 부결을 감수하고 - 현실적으로 2/3의 지지를 받기가 어렵다 - 의제화 자체는 해두고 넘어가고자 하는 할 수 있다. 아니면 조용히 개헌안 발의를 철회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전술적 공간이 없어지는 셈이다. 나는 지금이라도 사회적 개헌, 혹은 다포인트 개헌의 기본내용들을 제기하는 식으로 해서 개헌 의제화 국면에 급진적으로 개입하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이 어느 시점이 될 지 모르겠다. 나는 이 개헌 국면이 역설적으로 87년 헌법의 보수적 개정을 지향하는 우리 사회의 보수세력의 목소리는 노출되지 않으면서 87년 헌법의 진보적 개정 의제들을 대중화하는 한 계기라고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우리 사회의 보수는 87년 헌법의 역전을 지향하고 있다. 97년 체제의 영향 하에서 보수는 헌법에 시장주의적 원칙, 사적 소유의 원칙, 정부의 부당한 개입의 금지원칙 등을 더욱 명확하게 규정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개헌 의제화를 억압하고자 하는 자신들의 전략 때문에, 이러한 ‘헌법의 보수적 개정’ 요구를 공개화하지 못하는 역설적 딜레마에 처해 있다.


반면에 노무현 정부나 열린우리당은 ‘원포인트’ 개헌이라고 하는 방식으로 87년 헌법의 내용적 변화는 우회하려고 하고 있다. 즉 절차적 최소의제를 중심으로 ‘개헌 당위성’만을 이야기하는 형국이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등 진보세력이 초기에 한나라당과 동일한 ‘의제 억압전략’ 혹은 탈의제화전략을 - 자발적이건 결과적으로 - 선택했기 때문에, 지금 진보적 헌법논의를 국민에게 제출하려면 어떤 계기성을 만들어 내야 한다. 현실적으로 진보는 바로 이런 점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예컨대 긴급하게 민중세력, 시민세력, 민주노동당, 좌파정치세력 등이 원탁회의 같은 것을 구성해서 - 최대주의적 사회적 개헌안이 아니라 - 최소주의적 사회적 개헌안을 만들어서 공론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각자가 더욱 급진적인 안을 제출하는 것은 물론 별개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노무현 정부가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전략을 구사할 때, 이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도 방법이다.


제한된 사회적 개헌의제


그렇다면 87년 헌법의 진보적 개정의 방향에서 우리가 공론화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헌법은 단순히 이상이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정치적・사회적 관계들이 반영되는 것라고 할 때, 현시기 진보적・급진적 헌법내용을 공론화하기가 어려운 조건인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제한된 수준에서의 진보적 헌법 논의 자체도 향후 더 많은 정치적・사회적 투쟁이 필요할 것이다.


현단계 개헌논의의 지형의 한계성이 존재하고 ‘제헌의회’적 수준의 논의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할 때, 87년 체제의 한계성을 극복하고 97년 체제에 의한 87년 헌법의 실질적인 무력화(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의한 87년 체제적 민주주의의 무력화)를 쟁점화하고 공론화하는 방향의 대중선전의 차원에서 급진적 개입전략을 사고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진보적 헌법에서 담아야 할 내용들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동안 논의된 몇가지 사항들을 열거해 본다면 다음과 같은 것이 될 것이다. 먼저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사회적 개헌에서는 현재 헌법전문에서부터 헌법의 기본성격으로 규정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사회적 성격을 갖는 자유민주적 질서’로 재정식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는 국민정부와 참여정부 하에서 진행된 민주화운동 명예회복이나 의문사 등 모든 과거청산작업의 헌법적 근거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자유민주적 질서가 협소하게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노동자 투쟁을 포함한 많은 급진적 반독재 투쟁은 민주화운동 명예회복에서도 제외되었다. 사회적 성격을 갖는 민주적 질서를 경제의 운영원칙과 관련해 본다면, 현재 헌법에서 모호하게 존재하고 있는 경제민주주의를 보다 명확하게, 더구나 사회적 성격을 갖는 경제적 민주주의로 규정해내야 할 것이다. 공공의 이익에 부응하지 않는 시장의 작동에 대해서 공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이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시장경제의 건전성을 위협하는 경제독점에 대해서 적절한 공적 규제를 명문화하는 ‘반독점’ 조항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개헌은 최근 쟁점이 되는 토지와 주택 문제에 대해서 더욱 진보적 정책이 가능한 헌법적 근거들이 만들어지는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토지 공개념이 헌법에 더욱 명시적으로 반영될 수 있을 것이며, 주택이 주거의 대상이고 모두가 공유해야 할 대상이며 투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않되며 이를 위해서 적절한 공적 규제가 필요함을 명문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가장 필요하다고 간주되는 조항은 영토조항이다. 북한을 수복되어야 할 지역으로 간주하는 헌법의 영토조항의 손질이 필요할 것이다. 통일의 지향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영토조항 등의 손질을 통해서 남북한이 유엔에 2국가로 가입되어 있는 현실을 전제로 하여 평화적 관계를 명문화하는 조항이 삽입되어야 한다. 헌법이 과거 분단상황과 남북 적대상황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평화공존의 보다 적극적인 지향이 담겨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기본권 조항의 확장과 심화 규정이 필요할 것이다. 현행 헌법에서 독소 조항이 남아 있다고 하는 기본권 조항들을 보다 분명하게 확대규정하면서 시대상황의 변화를 반영하여 기본권의 확장이 필요할 것이다. 생명권, 환경권, 최소한의 인간다움 삶을 복지로서 향유할 복지권 등을 내포하는 식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보건의료, 주거, 교육 상의 보편적인 권리와 이러한 보편적 권리를 저해하는 불평등에 대한 적절한 공적 규제조항도 가능할 것이다. 나아가 개인정보 자율권이나 정보권, 정보 불평등 방지 등의 정신을 반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남성․비장애인․이성애자의 관점에서 규정된 헌법 조항을 보편적인 평등의 관점에서 재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과 모성을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그리거나 인간을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서만 구분하고 다양한 성적 소수자들을 주변화하는 조항도 손질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구화 시대 한반도가 한민족의 공간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정주외국인과 국제결혼자, 새터민들을 차별하지 않는 적극적인 차별금지 조항이나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평등화 규정들을 삽입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헌법의 최대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환경에 관한 조항을 새롭게 구체적으로 삽입할 수 있을 것이다. 환경권이 단순히 선언적 의미를 넘어서서 보다 분명한 국가 목표조항으로 삽입될 수도 있을 것이다. 환경에 대한 조항은 87년 체제의 한계 내에서 아래로부터의 다양한 환경투쟁이 87년 헌법 개정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왔기 때문에 새롭게 쟁점화할 수 있는 부분으로 생각된다. 더구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박정희식 토건국가 모델의 재생산 위에서 작동한다고 할 때 적극적인 환경조항의 삽입은 경제적 의미를 강하게 갖고 있다.

나아가 평화국가의 지향이 반영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반기문 UN사무총장 시대에 한국은 여러 국제적 분쟁지역에 수많은 파병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것은 물론, 전쟁에 대한 명시적인 반대와 그를 위해 국가권력을 견제할 권리, 즉 평화적 생존권을 삽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라크전 파병과 같은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UN을 통해서 공인되지 않은 파병사례, 나아가 국제평화의 관점에서 정당화되지 않는 파병에 대해서 명시적인 금지의 조항을 삽입할 수 있을 것이다. ‘국군의 해외파병에 대한 국제평화주의적 원칙’ 같은 것이 될 것이다.


나아가 시민들과 민중들의 참여를 보다 적극적으로 명문화하는 조항도 가능할 것이다. 국가에 대응하는 시민사회와 노동운동 등 민중부문의 역동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참여를 경제적・정치적・사회적 차원에까지 확장할 수 있는 근거가 헌법에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의 정신에 비추어 보더라도 노동자와 일반 시민이 공적 의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보다 적극적인 참여의 정신을 삽입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노동자의 자주관리의 정신으로까지 해석될 수 있는 참여와 주체적인 자율의 권리 등이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로서 앞서 제기한 대로 헌법개정의 전면적인 진보적 개정을 추동할 수는 없다. 단지 이러한 다양한 의제들을 중심으로 진보 내부에서 최소합의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하면 헌법개정의 전술적 공간에서 급진적 의제화 전략으로 개입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급진적 의제화 전략이야말로 보수와 중도리버럴 정치세력이 각축하고 있는 현단계에서 대선 국면은 물론 일상적인 국면에서 진보세력 - 민주노동당과 같은 정치세력이나 민중운동과 같은 사회세력 - 이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전략일 수밖에 없다.


‘대세와 관계없이’ 자신이 진보적・급진적이라고 생각한 의제만을 제시하고 ‘뒷짐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보수와 중도리버럴(혹은 두가지 보수들) 간의 각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대세에 관계가 있을’ 수 있다.(이것을 헤게모니 전략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람시적 의미에서 계급적 세력이 ‘민족적-민중적 세력’이 되기 위한 개입전략이 헤게모니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설정한 의제와 이른바 ‘부르주아적 정치판‘의 의제 간의 갭을 급진적 의제화 전략을 통해서 개입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조건 속에서 출현한 ‘신계급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대중들의 새로운 계급적・정치적 의식이 필요하다. 이를 촉발하고 대중들의 급진적 의식을 형성하기 위해서도 무엇을 가지고 분노해야 하는지 분노할 때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대중에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치세력이 중요한 세력으로 제도정치적 공간에서 성장해 가면 갈수록, 오로지 진보적이거나 오로지 우리에게만 유리한 공간은 출현하지 않을 것이다. 복합적 정치공간이 매순간 ‘솔로몬의 지혜’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모든 의제들에 대해서, 나도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상투적으로 - 그 상투적인 것은 보수적 미디어가 만들어낸 인식일 수도 있다 - 대응하는 않는 전략이 필요하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균열을 활용하고 그 균열을 급진화하고 그 균열의 정치적 효과를 급진적으로 전유하려는 새로운 전략적 고민이 매순간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글을 마치면서 한가지 사족을 단다면, 내 글을 읽는 독자 중 일부는 내가 참여연대 등 시민운동의 관점에서 글을 쓰는 것으로 예단하고 글의 내용을 보지 않고 비판하는 경우도 본다. 나는 최근 시민운동으로부터도 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있다. 사회운동에 대한 진보적 연구자의 글로 읽어주기를 바란다. 물론 이는 당연히 민중운동의 내부 관점일 수 있다. 90년대적 조희연만 있는 것이 아니다. 80년대적 조희연도 있다. 또한 2000년대 중반의 새로운 조희연도 있다고 부언해두고 싶다)

조희연 님은 성공회대 교수로,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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