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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세상]"FTA는 이기고도 지는 변증법적 게임"

"FTA는 이기고도 지는 변증법적 게임"


한미FTA 저지특별세미나, 'NAFTA 12년 멕시코의 현실'

특별취재팀 / 2006년07월11일 13시31분


한미FTA 저지 투쟁의 일환으로 준비한 특별세미나가 오전 11시부터 서강대 이그나시요 강당에서 열렸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와 한미FTA저지교수학술공대위가 주최하고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과 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가 주관한 특별세미나 'NAFTA 12년 멕시코의 현실'의 발제는 칼로스 우크캉가 멕시코 국립자율대학교 교수와 이남섭 한일장신대 교수가 각각 맡았다.


칼로스 교수는 '멕시코와 한국의 FTA협상 :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발제했다.

살리나스 대통령은 처음에는 다양화 정책을 시도했으나 실용주의 노선을 채택하면서 미국과 캐나다와 협상을 시작했다. 멕시코 정부는 사실상의 통합은 이미 벌어지고 있다. 이제 필요한 건 법적인 통합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즉 미국,캐나다,멕시코 국민의 앞으로의 사업방식을 명시해줄 사법체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멕시코가 미국 시장에 수출할 수 있게 되면, 세계 수출 시장도 쉽게 열릴 것이고 해외직접투자도 멕시코로 물밀듯 밀고 들어와 고용을 증진시킬 것이다. 살리나스 대통령은 이것을 윈-윈 정책이라고 공언했다. 이윽고 부시, 클린턴 행정부와 협상을 거친 뒤 1994년 1월 나프타가 효력을 가졌다. 바로 같은 날 사파티스타가 창설되었다.


멕시코의 중상층은 미국인이나 캐나다인처럼 상품과 서비스를 맘껏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인구의 40% 이상을 덮친 빈곤은 충격을 주었다. 월마트가 쳐들어왔고 이는 지금 멕시코 소매시장을 지배하는 가장 거대한 기업이다. 멕시코 민족주의는 박물관에나 보내야 할 유물이 되었다. 다들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다녔다.


그러나 멕시칸드림은 얼마 안 가 1995년 경제위기와 함께 끝을 보았다. 클린턴은 멕시코를 새로운 경제 파트너라며 지지했고, 미국은 멕시코 경제가 완전히 붕괴하지 않도록 재정 지원을 보냈다. 멕시코식 후유증의 발단이었다.


멕시코의 수출은 고도로 집약적이다. 멕시코의 미국 의존도는 수출 90%, 수입 70%로 종속적이다. 소수의 중소기업은 나프타로 인한 이득을 전혀 보지 못했다. 다국적기업은 석유와 석유화학 부문을 제외한 민감한 부문에 대한 주도권을 장악했다.


맥시코의 소수 기업은 국제화되었고 텔멕스는 라틴아메리카의 가장 부유한 CEO가 되었다. 소득 격차는 더 벌어졌고 극빈층은 증가했다. 1996년 빈곤층은 5백만 명을 상회하면서 전체 인구의 55%를 차지했다. 비정형 경제활동 종사자는 2천만 명에 이르고, 1천1백만 명에 달하는 멕시코 국민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이는 미국 전체 인구의 4%, 전체 인구 1억5백만 명의 멕시코에 대해서는 10%에 달하는 수치이다.


멕시코 중앙은행 통계에 의하면 2005년 멕시코 이민자들은 2백억 불에 달하는 현금을 본국으로 송금했다. 이는 66억 불이었던 5년 전에 비해 세 배 가량 상승한 것이다. 이 이민자들의 송금이야말로 석유 수출이나 관광보다 더 큰 국가 수입을 구성하고 있다.


가장 큰 패자는 농민이었다. 전통적 방식의 농업은 기술관료들에 의해 낡은 것으로 치부되었다. 적은 수의 농업회사만이 미국시장에 수출할 수 있었다. 농민들은 싼값으로 들어오는 수입품과 경쟁할 수 없었다.

멕시코는 더 이상 기초식품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국가가 아니다. 수입 면에서 쌀은 242%, 옥수수는 112%, 밀가루는 84% 증가하였다. 1997년에서 2005년까지 농업부문에서 2백만에 달하는 고용이 사라졌다. 미국 또는 멕시코시티 또는 다른 도시지역으로의 이민이 증가했다. 신자유주의는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은 현행 모델로 남아있다.


멕시코인들은 그 대가를 반드시 치를 것이다. 멕시코는 경쟁력을 육성하지도 않고 경제를 개방했다. 나프타는 멕시코를 극단적으로 변형시켰다. 오늘날 멕시코는 미국 시장 내에서 그 기반을 상실해가고 있다. 멕시코 국민은 갈수록 FTA에 회의적이 되어가고 있다. FTA는 이기고도 지는 변증법적 게임이다. '천국하고는 멀고 미국하고는 가깝다'는 자조는 '미국하고 가까워질테니 다행이다'가 되었다.


칼로스 교수에 이어 두 번째 발제 '나프타와 멕시코 사회 : 신화와 현실'은 이남섭 한일장신대 교수가 맡았다. 이남섭 교수는 나프타 12년 동안 멕시코에서 일어난 일을 소개하고, 나프타 체결 당시 기대와 우려에 대해 자본과 국가의 입장, 노동의 입장, 시민사회의 입장, 민중의 입장 등 네 개의 다른 입장을 요약해서 발표했다. 또한 나프타 12년의 결산을 경제적 측면, 사회적 측면으로 나누어 살피고, 이어 한미FTA 협상에 주는 시사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12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볼 때 나프타가 약속한 청사진은 거의 신화 수준에 가까운 불확실한 것으로 평가된다. 빈곤의 문제처럼 나프타와 관계없이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도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김원호.1999)

그러나 나프타의 실제 결과는 경제적 실익이 분명하지 않거나 많지 않은 반면 사회적 충격과 손실은 너무나 큼을 보여주고 있다. 나프타로 인한 사회적 충격은 사회적 불안과 갈등 요인이 되며 사회적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이성형,이남섭. 1998)


치아파스의 사파티스타 봉기와 운동의 확대는 이러한 우려의 실제 사례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 주권 상실의 가능성이 훨씬 많음으로 인해 경제영역에서의 국가안보의 위험성이 훨씬 크다는 사실에 있다. 나프타의 약속과 현실 사이에 괴리는 너무 크다. 이점이 미국과의 FTA에서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할 시사점이다.


한미FTA 저지를 위한 국제회의 '세계화, FTA 그리고 한미FTA, 어떻게 맞서 싸울 것인가?'는 오후 2시부터 민교협 후원으로, 범국본 주관주최로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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