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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기고] 미친 경쟁과 교육 (조희연/2010.2.22)

나는 ‘경쟁’에는 인간 사회가 갖는 고유한 ‘합리성’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좋은 직장을 잡기 위해서건 높은 보상을 받기 위해서건 사람들은 경쟁을 하고, 경쟁의 결과에 따라 상이한 보상을 받는다. 모든 사회는 이런 종류의 동기부여 기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과잉경쟁으로 치달아서, 경쟁이 갖는 고유한 합리성을 파괴하는 수준으로까지 치달을 때, 우리는 그것을 ‘미친 경쟁’이라고 부를 수 있다.


우리의 교육경쟁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비정상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교육경쟁에서 이탈하는 수밖에 없다. ‘경쟁 이탈 전략’을 쓰지 않고 내부에서 경쟁할 때 온 가족이 ‘거대한 전쟁’을 해야 한다. 더구나 이 경쟁은 부모의 재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참여할 수 없는 ‘그들만의 경쟁’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는 현재의 교육경쟁이 비합리적 경쟁으로 작동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동시에 ‘부도덕한 경쟁’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사회복지 또는 사회적 안전망마저 취약한 한국 현실에서 교육을 통해 학력이나 학벌이라는 ‘개인적 안전망’이라도 마련해야 한다는 인식하에서, 이 미친 경쟁은 더욱 가속화된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효과가 여기에 촉진제 구실을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개혁자유주의정부라고 할 수 있는 과거 민주정부하에서도 ‘평준화 체제’를 ‘사수’하는 데만 매달렸지, 이 미친 경쟁의 구조를 바꾸는 데는 결국 실패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보수는 어떤가. 엠비정부하에서 한국의 보수는 교육을 포함하여 한국 사회를 ‘경쟁 결핍’ 상태로 간주하고 경쟁을 촉진하는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물론 교육정책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이해하는 한 선진화 전략의 핵심은 경쟁촉진 전략이다.


나는 교육열을 부단히 ‘비합리성의 극치’로까지 왜곡하는 ‘미친 구조’ 자체에 메스를 대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장의 긍정적 요인이 대립물로 이미 변화되어 있다. 물론 그 핵심에 비합리적인 학벌질서가 있다. 수천만원을 사교육에 투자해서라도 이른바 스카이대학에 가게 되면, 그것은 현재의 학벌질서에서 충분히 남는 장사이고 ‘투자가치’가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미친 경쟁은 미친 구조에서 말미암는 ‘합리적 경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과잉경쟁을 더욱 촉진하는 전략에 매몰되기보다는, 오히려 이 과잉경쟁의 합리적 재조정을 위해서, 학벌질서와 사회적 안전망 자체를 진지하게 재검토해야 한다. 보수-진보의 경계를 넘어서, 현재의 학벌질서의 합리적 개편을 위해 국공립대 통폐합 등 다양한 제도적 방안까지도 진지하게 검토하고 획기적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국민적 공론장을 마련해보자. 각자가 경제적인 의미에서 합리적으로 행위하고 있음에도 생겨난 각 사회영역과 차원 간의 부조화(미스매치)에 대해서 정치사회학적 개혁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중장기적 정책사안이며 급진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대학이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치열한 교육경쟁이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들도 함께 고민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학벌 특권에 기초한 ‘선발 장사’가 아니라,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과정을 통해 선발된 학생들을 훌륭한 인재로 키워내는 진정한 ‘교육 경쟁’을 하는 것이 국제경쟁력 있는 대학으로 만드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사교육 시장의 이권을 위해 ‘에스에이티(SAT) 시험지 빼돌리기’와 같은 국제적 범죄도 서슴지 않으며, 여성이 미친 경쟁의 중압 때문에 출산을 기피하는 ‘사회 자체의 위기’에 이미 둔감해져 있는 우리 자신을 성찰하면서, 이제라도 더 근원적인 구조개혁 방안을 토론해보자.


조희연 성공회대 시민사회복지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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