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저항 위한 보루이자 피난처 [2011.07.18 제869호]
[김동춘의 폭력의 세기 vs 정의의 미래] 용산 참사에서 민간인 학살 부른 한국전쟁기 토벌작전을 보다 ②
살려고 산과 망루에 올랐으나 주검 되어 돌아온 가난한 사람들
(기사 소개)
2009년 1월20일 서울 용산의 새벽, 경찰의 전격적인 진압작전으로 그 전날 망루에 올라간 철거민 5명과 작전에 투입된 전경 1명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새까맣게 그슬린 주검이 되었다. 그슬린 시너통과 화염병도 함께 발견됐다. 그러나 경찰은 모든 주검과 유류품을 공개하지 않은 채 곧바로 현장을 치워버렸고, 신원 확인도 하지 않고 가족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주검을 옮겨 부검했다. 사건과 관련한 모든 증거는 오직 경찰의 관리 통제하에 놓였고, 이후 용산 참사의 진실은 오직 수사 당국의 자의적 증거물 선택에 의해 마무리됐다. 대통령과 경찰에 의해 ‘떼잡이’, 혹은 ‘도심 테러범’으로 불린 망루 농성자들은 결국 법원에 의해 그들이 던진 화염병 발화 때문에 사망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현장에서 살아남은 철거민 농성자 9명은 ‘특수공무집행방해 치사’, 즉 전경 1명을 죽인 죄로 전원 유죄를 선고받았다.
(기사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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