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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2011.10.17][김동춘의 폭력의 세기 VS 정의의 미래] 공인의 실종 ① 해방된 나라에서 ‘빨갱이’로 몰려 죽은 공인들-공적 활동했던 모든 정치적 반대자 절멸 시도한 이승만·친일세력

동학농민항쟁을 이끈 전봉준은 체포돼 서울로 압송되었다. 일본공사가 배후에서 조종한 형식상의 재판에서 재판관이 “너는 피해가 없었다 하는데 무엇 때문에 난을 일으켰느냐?”라고 묻자, 전봉준은 “한 몸의 피해가 있다고 들고일어나는 것이 어찌 남자의 일이라 하겠느냐? 여러 사람이 원망과 한탄을 하기 때문에 백성을 위해 해악을 없애고자 일어섰다”고 대답했다. 썩은 조선왕조와 일본의 침략에 맞섰던 전봉준은 바로 백성의 원한을 풀기 위해 농민군의 지도자가 되었으나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공익 추구세력이 불순분자인 시대


조선이 일제 식민지로 전락할 무렵에 고관대작이 아닌 몰락한 양반, 유생이나 중인 하층 출신 지식인 중 일부는 유교적 가르침에 따라 공인(公人)의 덕목을 실천했는데, 의병운동에 투신한 사람이나 망국의 한을 품고 자결한 매천 황현, 가산을 정리해 만주 독립운동을 지원한 이회영, 이동영 가문들이 그들이다. 그러나 전봉준과 이후의 독립운동가들은 유교적 멸사봉공(滅私奉公)의 논리가 아닌 만민평등의 새로운 사상에 입각해 민족과 민중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투쟁에 나섰다. 근대적 공인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는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는 선량한 국민이 되라”고 가르쳤다. 그것은 천황에게 충성하고 오직 가족만 돌보라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일부 조선인들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처자를 배불리 먹이기 위해 일제의 밀정이나 경찰, 군인이 되었다. 그런데 근대적 공적 가치를 위해 헌신한 항일운동가들의 다수는 해방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으며, 살아남은 사람도 구타, 고문, 정신적 고통의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다.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살아난 항일 인사들 상당수가 해방 뒤 국가나 민족의 지도자로 대접받기는커녕, 일제가 남기고 간 그들의 대리자들, 즉 일제하에서 처자식 배불리 먹이려고 일제의 끄나풀 노릇을 서슴지 않던 사람들의 손에 ‘해방된 나라’에서 ‘좌익’으로 몰려 죽었다는 점이다. 사익을 추구한 사람은 지역사회의 ‘유지’, 즉 ‘우익’이 되었고, 공공의 대의에 몸을 던진 사람은 빨갱이 혹은 또다시 불순분자가 되었다. 그리고 사익추구자들은 일본 경찰이 항일 인사들을 감시·색출하려고 만든 명단을 활용했으며, 이후 이들을 주로 전향한 좌익으로 구성된 국민보도연맹으로 묶었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학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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