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부결, 반역과 무덤으로 가는 길
[긴급 기고] 비대위 안을 최대공약수로…분당 이후 또 분열할 것
2008년 2월 3일은 한국진보운동, 특히 진보정당운동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날이 될 것 같다. 오늘 임시 당대회가 잘못하면 민주노동당이 쪼개지는 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민주노동당 당원이 아니다. 그러나 이 당에 우호적인 지식인으로서, 손놓고 있기에는 너무 절박한 생각이 들어서 이 글을 쓴다.
분당만은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말이다. 이제 임시당대회에서 대의원들이 당 분열과 분당의 길을 막고 민주노동당을 재약진의 궤도에 올려놓아야 한다.
분당만은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벌써 50대 중반이 되어갈 정도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나는 어떤 문제를 ‘인간(행위)에 대한 의문(疑問)’으로 바라볼 때가 많다. 특히 한 인간이나 집단이 다른 인간의 눈으로 보면 전혀 타당하지 않은, 때로는 스스로에게 파괴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경로를 선택해서 가는 것을 바라볼 때 그런 회의를 가져보곤 한다.
이상한 예가 될 지 모르겠는데, 작년 말 대선 때의 이야기로 시작해야 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친구들 중에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친구가 나한테 막판 후보단일화 등을 포함하여 문 후보의 진로에 대해서 조언을 구했다.
나는 그때 “정동영 후보와 후보단일화 협상을 하는 것이 문 후보에게 좋을 것이다. 비록 단일화 협상에서 문 후보 자신이 후보로 낙착되지 않더라도 정동영 후보는 필패(必敗)할 것이기 때문에 아마도 대선 이후는 ‘문후보 세상’이 될 것이다. 특히 대선을 정동영 후보 중심으로 치르고 총선을 문후보 중심으로 치르는 형국이 될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문 후보 다음과 같은 이유로 "통합은 절대 안 되며 따라서 통합신당과 결코 같이 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는 것을 후에 그 친구를 통해서 전해 들었다.
“통합신당 측은 노무현 정부의 실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단일화하면 같이 매도당하니까 같이 죽는다. 또한 통합신당은 산업사회적 정당이라고 한다면 문 후보는 탈산업사회적 정당을 지향한다(아마 유한킴벌리에서 실행한 4교대제 등을 염두에 둔 것일 것이다).
통합신당은 부패로부터 자유롭지 않은데 문 후보는 청렴 후보이다. 통합신당을 국민이 버렸는데 창조한국당은 국민적 지지의 잠재력이 대단히 큰 정당이다" 등등. 그리고 그 친구는 문 후보 자신이 통합을 반대한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려줬다.
문국현과 민주노동당
그리고 "문후보는 대선 뿐만 아니라 총선에서도 ’마이웨이‘를 하려고 한다. 그것이 오히려 사는 길이라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행동하고 있다"라는 말을 전해주었다. 실제 정동영 후보와 문국현 부호의 통합은 성사되지 않았다.
나는 단순 조언자이기 때문에 반응 자체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이해관계는 없지만 외부자인 내 눈에는 분명히 ’마이웨이‘가 죽는 길인데 왜 그런 선택을 할까하는 생각을 했다.
외부자인 내 눈에는 너무도 명명백백한데 왜 그런 명백한 전망을 도외시하면서 정반대의 선택을 하는가하는 점에서, ’인간(행위)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 실제 대선 이후 문 후보에게는 내가 그때 생각했던 ’명명백백한‘ 전망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나는 여기서 문 후보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노동당에 대립적인 ‘부르주아적 후보’의 예를 들어서 미안하다. 그러나 모든 인간사에는 한 개인이나 한 집단의 눈으로 보는 현실(전망)과 주위의 눈 사이에 현저한 갭이 존재하는 경우들이 많다. 주위의 눈으로 보면 명백히 ‘죽는 길’인데 한 개인이나 집단의 눈으로 보면 그것이 ‘회생의 길’이고 ‘번창의 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나는 지금 민주노동당을 둘러싼 대립에서 강경분당파 그룹과 강경자주파로 통칭되는 그룹의 눈으로 보는 현실과, 나와 같이 외부에 있는 사람의 눈으로 보는 현실에 너무 큰 괴리가 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의 부족한 소견으로 볼 때, 현상유지와 분당이라고 하고 극단적 선택을 넘어서, 비대위에서 제시한 혁신안을 최소공약수로 하는 단결과 혁신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현상유지와 분당을 넘어서
임시 당대회에서 비대위를 비판하는 강경자주파가 비대위 혁신안을 부결시키고 다른 한편에서 강경분당파가 분당을 결행하는 것은 감히 외람되게 현단계에서 ‘진보 자체에 대한 반역’이며 진보정당운동의 무덤으로 가는 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임시 당대회에서 만일 강경노선들이 격돌하면서 민노당이 쪼개지는 상황으로 가게 되면, 향후 경로는 너무도 명명백백하다. 강경자주파가 비대위 혁신안을 부결시키게 되고 그것은 비대위 체제를 붕괴시키며 이는 급격한 탈당 파동과 분당으로 가게 될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강경분당파를 따르는 일부의 탈당이 나타날 것이며, 나아가서는 정파적 색채가 없이 민노당에 대한 순수한 애정으로 당원이 된 사람들이-보수정당과 똑같은 엉터리 정당이라고 좌절하면서-탈당하는 사례가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것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현재는 같은 당 내부의 갈등이니까 서로에 대한 비판이 그래도 제한되지만 분당이 되면 서로에 대한 비판은 더욱 격렬하게 될 것이다. ‘상대방이 죽어야 내가 사는’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이러한 대립은 대중조직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어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분파적 대립이 격화될 것이다. 국민들은 "미친 놈들 지*하고 자빠졌네" 하면서 관심을 거두게 될 것이다. 민노당에 우호적인 지식인들도 이제 ‘도덕적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어느 한쪽을 지지하기 보다는 ‘지지 철회’로 거리두기를 하는 것이 일반화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명명백백한 예견에 대해서, "갈등은 단기적이며 장기적으로는 대중의 힘에 의해 ‘올바른 길’이 우위를 점할 것이며 올바른 노선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확대되면서 중장기적으로는 진보운동에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종북주의 논란' 다루지만 '반북주의' 반대는 같아
현재 분당파와 강경자주파가 그래도 공존할 수 있는 접점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분명하게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 좁은 소견으로는, 그래도 비대위가 제시한 수준에서의 혁신을 최대공약수로 할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임시 당대회 이후 당 내부에서 갈등하면서 자신들의 의제를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강경자주파의 입장에서는 비대위의 혁신안이 통일운동의 대의를 거스르는 것이며 국가보안법으로 고생하는 동지를 매도하는 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비대위는 일심회와 관련된 사건 중 민주노동당의 내부 정보를 북한에 전달한 ‘일탈’적 행위만을 혁신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편향적 친북행위’만을, 즉 민노당의 당헌당규를 위반한 행위에 대해서만 문제삼고 있다. 이를 심상정 비대위 대표가 해명하는 인터뷰를 <레디앙>에서 한 바도 있다. 통일운동의 대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종북주의 논란’을 다루지 ‘반북주의’에는 결연히 반대한다는 공통분모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넘어가야 한다.
반대로 강경분당파는 임시당대회를 통해서 비대위 혁신안이 통과되더라도 결국 심상정 대표를 포함한 비대위가 자주파의 ‘일탈’적 행위의 포로가 다시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비대위가 원래의 종북주의 청산의 입장에서 후퇴했다고 생각하면서 분당의 고삐를 강화하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강경분당파에 속하는 사람들 중 그동안 당 활동에서 느낀 상처가 많다고도 들었다. 그러나 비대위 혁신안은 그동안 강경분당파가 주장했던 이른바 ‘종북주의’의 대표적인 사례에 대한 해결을 담고 있다. 그것은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분당 이후 또 분열할 수도 있다
더구나 내가 분당을 반대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정작 분당을 하더라도 분당파들이 ‘종북주의 비판, 자주파 패권주의 비판’이라고 하는 네거티브한 공통성 이외에 적극적인 동질성이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현재의 민주노동당은 그것이 탄생하기까지는 진보운동의 흐름 속에서 역사적 기반들이 형성되어져 왔다. 한마디로 탄생에 대한 공감대가 진보운동 공동체 속에서 그리고 대중 속에서 역사적으로 투쟁 속에서 형성되어져 왔다.
이런 점에서 만에 하나라도 대중적인 진보정당이 새롭게 구축되더라도, 진보적 대중운동 속에서 명확한 자기 기반을 가질 수 있는가를 냉엄하게 성찰해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분당하는 순간 ‘사분오열’될 수도 있다.
반NL적 공통성 혹은 반종북주의의 공통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대중을 획득하기 위한 대중사업이 성공적으로 전개되지 않아서 나타나는 문제를 반대 정파에 대한 비판의 문제로 치환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나는 이명박 정부 하에서 정작 ‘PD적 의제’, 즉 평등파적 의제의 시대로 오고 있고 이러한 때에 정작 신개발주의정권과 싸우면서 대중을 획득해야 하는 절박한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대중획득이 새로운 당으로만 된다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우리와 같은 외부자의 눈으로 볼 때는 정반대의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지난 대선에 대해서 대선토론회 평가토론회 발제를 하면서 ‘단색화된 평가가 아니라 복합적 평가’가 필요함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러면서 신성장연합의 등장에 대응하는 복합적 신 평등연합의 구축이 필요함을 지적하였다.
평등파야 말로 이러한 신평등연합의 구축에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단지 ‘분열’의 멍애 위에서는 정작 이러한 과업들이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선도탈당’을 한 분들도 임시 당대회가 성공적으로 치루어진 후, 다시 당으로 복귀하면 좋겠다.
그 애정을 바로 이러한 시대적 과제에 앞장서는 열정으로 분출하면 좋겠다는 염원을 가진다. ‘부부 갈등은 칼로 물베기’라는 말이 민노당 내부 갈등에 적용될 수 있다.
물론 나는 NL이나 PD 등으로 상징되는 노선이나 이념의 ‘차이’가 현실에서 어떤 조직적 형태로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어느 하나의 방향만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NL적 정당과 PD적 정당, 다수의 진보정당들이 경쟁하면서 공존하는 경우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대중들의 의식조건과 전반적인 정치사회적 조건에 대한 타산 위에서 선택해야 하는 문제이다. 현재는 명백히 그러한 국면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분열이 아니라 공존의 새로운 준거점을
내가 절박한 심정으로 이 글을 쓰는 것은 2008년 2월 3일은 진보정당운동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시점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정치질서의 향방이 갈리는 시점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87년 이후 민주화 20년을 통해서, 비록 갈 길이 멀지만, 한국의 정당구도는 일본 정당체제와 같은 ‘보수 일당 패권구도’를 넘어섰고 나아가 미국의 ‘보수정당-중도리버럴 정당’의 양당구도를 넘어섰다.
그러나 진보정당의 분열은 우리가 넘어선 경로를 역주행하여 다시 ‘보수정당-중도리버럴 정당’의 양당구도로 후퇴하는 전기가 될 수도 있으며 더 악화되면-이명박 정부의 ‘우파 민중주의적’ 정책이 혹시라도 성공하는 것과 맞물리면서-‘보수 일당 패권구도’로 후퇴하는 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도 오늘 열리는 임시당대회는 분열이 아니라 공존의 새로운 준거점을 만드는 장이 되어야 한다.
얼마 전 '태조왕건'이라는 사극이 한창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다. 내용은 다 잊어버리고 선택적으로 하나만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사극의 마지막 부근에서, 견훤의 아들 신검이 스스로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하여 아버지를 금산사에 유폐하고 권력을 잡는 장면이다.
그러나 거시적으로 보면 그 과정은 백제를 파멸의 길로 끌고 감으로써 결국 스스로를 죽이는 길임을 드라마는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나는 그때 인간이 미시적으로는 합리적으로 행위하는 것 같지만 거시적으로는 비합리적으로 행위하는 경우라고 생각했다. 거기서도 나는 ‘인간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
강경자주파의 입장이나 강경분당파의 입장에서 보면 비대위의 혁신안 자체가 여러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레디앙>에 실린 어느 칼럼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반대정파와 같이 할 수 없으면, 대중과도 같이 할 수 없다’라고 생각한다.
비록 강경파의 입장에서는 문제가 있더라도 민노당이라는 87년 이후 한국민주주의의 최대의 제도적 성과를 유지하면서 그 틀 내에서 각축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민노당의 당원이 30만이 되고 50만이 되었을 때 그 기초 위에서 분열해도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참으로 긴 하루가 될 것 같다
강준만 교수가 얼마 전 필자의 글에 대해서 비판하면서 "진보의 문제는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이다"라는 말을 한 바 있다. 어떤 점에서 진보는 소통능력의 회복에 대해서 고민하여야 한다. 정파간의 소통능력과 대중과의 소통에 대해서 우리가 새롭게 진지하게 고민해보도록 하자.
민주노동당 내 현재의 대립 지점도 내부자의 시각으로는 화해할 수 없는 것일 수 있겠지만 대중의 눈으로는 이해가 되는 것이 아니다. 대중들에게 그 대립 지점을 이해될 때까지 우리는 내부에서 공존하면서 더욱 싸워야 할지 모르겠다.
한나라당의 경우도 보자. 97년 권력을 상실한 이후 당내의 많은 갈등에도 불구하고 보수세력은 한 정당의 틀 내에서 공존하면서 투쟁하여 왔다. 그리고 마침내 반대세력들이 대중의 지지를 상실하는 순간에 재집권의 기회를 가진 것이다. 그리고 압도적인 재집권 속에서, 마침내 다시 분열하게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비록 적대정당이지만 진보정당도 이러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008년 2월3일 임시당대회 후 내가 ‘오늘이여 목놓아 크게 우노라(是日也放聲大哭)’할 지, ‘긴 긴장 이후 해방감을 맞보면서 진보정당의 미래를 다시 낙관하게’ 될지... 오늘 하루는 참 긴 하루가 될 것 같다.
2008년 02월 03일 (일) 07:36:26 조희연 /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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