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야, 말 좀 쉽게 해라"
[10개 씽크탱크 연속토론회] '담론 핵심 대중적 언어로 바꾸기'
'운동권 사투리'라는 말이 있다. 진보의 화법이 생활인의 정서와 동떨어져 있음을 꼬집는 말이다. 보통 진보진영은 말이 좀 어렵다. 한 가지 설명하는 데 개념어가 주렁주렁 매달린다.
추상 수준이 높은 담론의 경우는 더하다. 진보적 민중주의, 사회연대국가, 신자유주의... 일반인은 좀체 내용을 짐작하기 힘들다. 냉정하게 보자면 운동권 울타리 안에서만 통용되는 담론이다. 이는 곧 이들 담론의 영향력의 범위가 운동권 내부에 국한된다는 것을 뜻한다.
반면 보수진영은 '선진화' 담론으로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 다소 식상한 느낌도 들지만 쉽다는 게 '선진화'란 포장지의 미덕이다. 대충 듣기에도 '잘 살자', '발전하자', '수준을 높이자'는 얘기인 것 같다.
'선진화'란 말의 전래 용법에는 '좋은 것', '바람직한 것'이란 가치판단이 깔려 있다. 박세일 교수가 내세운 '선진화' 담론은 적어도 겉포장만 봐서는 시비를 걸 소지가 없어 보인다. 이렇듯 대중적 담론 싸움에서 보수는 진보를 이기고 있다.
이런 고민을 깔고 대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열린다. 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소장 조희연)가 22일 주최하는 10개 싱크탱크 연속토론회의 4회차 토론 주제는 '어떻게 진보 담론의 핵심을 대중적 언어로 전환할 수 있는가'이다. 진보 담론을 생활인의 용어로 담아내는 방법을 모색하는 자리다.
▲ 지난해 11월 24일 10개 싱크탱크 합동 연속 토론회 중 첫번째가 김대중 도서관에서 열렸다.
이 연구소의 조현연 부소장은 "진보담론은 너무 어렵다. 이게 대중과의 소통을 가로 막는다. 그 결과 담론의 영향력도 제한된다"고 했다. 이를테면 진보정치연구소가 제시하는 '사회연대국가'나 조희연 교수가 주장하는 '진보적 민중주의'는 일반인의 접근을 차단하는 겉포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토론에선 '조희연 교수가 진보적 민중주의'의 대중적 표현에 대해 고민한 결과를 메모 형식으로 꺼내놓을 예정이다. 진보정치연구소는 '사회연대국가'에 대한 동일한 고민의 결과를 준비할 예정이다. 이날 토론은 각 연구 단위들이 A4 1~2장 분량의 자료를 갖고 와서 발표하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쉬운 담론'은 절박한 정치적 문제다. 대선이 있는 올해는 더욱 그렇다.
지난해 한나라당은 '세금 폭탄'이라는 조어로 한껏 재미를 봤다. 정치권에선 미국의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쓴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라는 책이 유행하기도 했다. 저자는 '왜 서민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와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공화당에 투표할까'를 분석하면서 공화당이 만든 개념, 구호가 공론의 장을 지배했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린다.
물론 '쉬운 담론'이 곧 '지배적 담론'은 아니다. '양극화'는 쉽지 않은 말이다. 그런데도 이제 국민 누구나 '양극화'를 이야기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이 말을 자주 사용한 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분석이다. 담론의 지배력은 메신저의 현실 정치적 지배력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강제다.
정치적 영향력에서 열세에 있는 진보세력은 쉬운 화법으로 좀 더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껏 진보진영은 여기에 대한 고민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노회찬 의원실 이준협 보좌관은 "진보정치의 담론은 대개 이론에서 시작한다"면서 "유권자의 마음의 지도에서 시작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민주노동당에게 당의 강령과 이념을 대중적 언어로 재구성하는 것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이와 관련, 민주노동당 일각에선 '선진화'의 개념을 부분적으로 차용하는 방안을 고민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03월 16일 (금) 12:16:35 정제혁 기자 jhjung@redia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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