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태국학회논총 15-1호, 2008.08, 한국 태국학회
한국태국학회논총 15-1호
타이: 경제자유화와 ‘지배하는 지배계급’의 민주주의*
박 은 홍**
Ⅰ. 문제의 제기
타이에서 절대왕정체제를 대체한 근대국가는 군부와 관료에 의
해 독점되었고, 의회, 정당, 자본가집단, 노조 등의 이익집단은 국가
기구에 근접할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이때 군부관료집단
이 자신의 정당성을 높이기 위해 취한 전략은 배타적 민족주의노선
이었다. 특히 절대왕정시기부터 이미 상업자본으로서의 지위를 누
리고 있던 화인자본(華人資本)이 군부관료집단의 주된 공격대상이
되었다.
특히 군부정권은 국영기업을 설립함으로써 화인자본의 상권을
잠식하거나 직접적으로는 이들 기업을 인수하였다. 결국 국영기업
은 군부관료집단의 지배도구로 제도화되었고 사적자본은 이들에게
생사여탈권을 맡겨야 했다. 그렇지만 국가는 공식적으로 경제민족
주의를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적자본을 대표하는 화인자본의
자본력과 경영기술을 무시할 수 없었다. 특히 1960년대에 들어와
개발주의가 강조되면서 기술관료집단과 화인자본을 필두로 한 사
적자본에 대한 군부의 지원이 있게 됨에 따라 경제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적자본이 활성화됨에 따라 기존의 천민자본,
지대자본(rent capital), 허수아비 자본 등으로 명명되던 타이자본이
명실상부한 산업자본으로 성장하였다. 또한 산업화가 수입대체 단
계에서 수출주도 단계로 전환됨에 따라 국제시장으로부터의 규율
을 피할 수 없게 된 국내자본의 기업가정신이 제고되었다. 그리고
민주화와 함께 정치권으로 진출하는 기업인이 늘어났다.
타이의 경제자유화는 이러한 정치경제적 상황을 배경으로 본격화
되었다. 그러나 더 많은 시장을 수반하는 경제자유화와 함께 등장한
신생민주주의는 수익성이 매우 높은 대형 프로젝트가 걸려 있는 사유
화 과정에서 정실관계를 확대재생산하는 양상을 빚었다. 이를테면 탁
신체제의 등장이야말로 이러한 경제자유화와 결부된 정실정치
(patronage politics)의 대표적 산물로서 2006년 군부 쿠데타에서 볼 수
있듯이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방해하는 중대요인이 되었다.
해거드와 카우프만(Haggard and Kaufman 1995)의 분류에 따르
면, 타이는 경제적 위기 없이 민주주의 국면으로 들어선, ‘위기없는
이행’(non-crisis transition)을 경험한 동아시아 사례에 해당한다.1)
나아가 타이는 1997년 경제위기를 계기로 이른바 ‘국민의 헌법’으
로까지 불린 새로운 헌법을 제정함으로써 ‘위기를 매개로 한 공고
화’(crisis-driven consolidation) 사례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1997년에
제정된 타이왕국법은 1991년에 제정된 옛 헌법과 비교하였을 때 국
민의 자유권과 정치참여를 일층 보장하는 등 이른바 ‘1997년체제’
의 기초가 되었다.
하지만 ‘1997년체제’의 최대 수혜자는 절대적 지지를 기반으로 탁신체제’(Thaksinocracy)의 길을 연 정치적 자본가 탁신 친나왓이
었다. 요컨대 ‘1997년체제’의 성립은 관료적 정체(bureaucratic
polity) 혹은 과두제로부터 부르주아 정체(bourgeois polity) 혹은 신
과두제로의 중대전환(박은홍 2008)으로서, ‘탁시노크라시’의 예처
럼 이때의 부르주아정체는 지배계급의 간접지배가 아닌 직접지배
의 형태로 나타났다.2) 이 글에서는 타이에서 1980년대 후반에 시작
된 정치적 ․경제적 자유화가 지배계급이 직접 지배하는 민주주의
에 이르기까지의 맥락을 시장국가의 형성->진화->절정->위기의 관
점에서 검토하도록 하겠다.
* 이 논문은 2005년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에 의해 연구되었음(KRF-2005-J05202).
**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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